지난 2013년 10월, Zirkonzahn의 수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설치 시스템 점검을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인천의 모 치과기공소를 방문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는데, 그 치과기공소의 소장님이 엔지니어에게 물었습니다.
“모델리어 소프트웨어의 한 면은 왜 공란으로 남겨 놓은 건가요? 이상할 정도로 고의적으로 보이는 여백이네요.”
그러자 수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대답했습니다.
“네, 그 자리는 향후 개발될 테크놀러지를 삽입하기 위해 남겨 놓은 것이고, 상세한 내용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이미 진행 중입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19년 2월 2일, 12명의 한국 유저를 포함, 총 17명의 사람들이 Zirkonzahn의 새로운 재료와 프로그램, 액세서리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Zirkonzahn 본사로 떠났습니다.
▶ 2019년 2월 2일
주말 도착이라는 점을 이용하여 우리 모두는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베니스로 향했습니다.
베니스에 도착해 차가운 입김이 나오는 습한 밤 공기를 들이키니, 피곤하다는 생각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바로 앞에 도착했다는 흥분과 설렘이 앞섰습니다.
▶ 2019년 2월 3일
우기가 계속되고 있고 90mm에 달하는 비가 쏟아지는 상황이라 베니스섬에 갈 수 없을 것이라는 소식이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을 코앞에 두고 포기할 순 없었습니다. 비가 잠시 그친 이른 새벽, 17명의 참가자 전원은 베니스를 향했습니다.
섬 주변의 바다는 아직도 넘실댔고, 길바닥에서는 물이 거꾸로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로 흠뻑 젖은 도시는 너무나 아름답고 고요했고, 17명 만을 위한 작은 도시같았습니다. 그렇게 베니스는 우리의 첫 여정을 반겨주었습니다.
베니스에서 깊고도 짧은 여정을 보낸 일행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Zirkonzahn 본사가 있는 Brunico로 떠났습니다. 북부 이탈리아의 Brunico는 이틀동안 펑펑 내린 눈으로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영화에서 자주 봤던 유럽의 눈덮인 작은 마을, 동화 속에서나 보던 예쁜 호텔이 우리를 위해 Zirkonzahn이 마련해준 숙소였습니다.
첫날 저녁은 하몽과 와인을 마시면서 MAD/MAM을 접하고 처음 이곳을 찾아왔던 옛추억을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 2019년 2월 4일
Zirkonzahn 본사에서는 회사 명찰을 단 직원이 배웅을 나왔고, 본사 입구에는 태극기와 함께 모든 참가자의 이름을 정성스레 써놓아 진심으로 반갑게 초대받은 느낌이었습니다.
본사의 회의실과 세미나실의 룸네임 택(tag)에는 ‘Luca Nelli’, ‘Aldo Zilo’ 와 같은 이름이 쓰여져 있었는데, 창립자 ‘Enrico Steger’씨의 오랜 치과기공사 친구들이자 세라미스트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생산팀에서는 본인의 출생지 지역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뿌리와 관계를 중시하는 창립자 ‘Enrico Steger’씨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사무실에는 시침만 있는 대표시계가 걸려 있었습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한다”는 의미라고 하며, 세계 각국의 시간을 표시하는 10여 개의 벽시계가 함께 있어 Zirkonzahn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본사를 견학하던 중 최근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있는 CAD용 터치스크린을 이용하는 직원을 발견했습니다. 손끝을 터치스크린에 맡기고 치아 모델 디자인에 몰입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을 오가는 가벼운 손놀림을 보니, 이제 마우스가 아닌 내 손의 터치를 이용하는 시대가 다시 돌아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일행 중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고 “역시 기공은 손이야~”라고 말했고, 우리 모두는 큰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Zirkonzahn 본사의 장비와 재료 생산 공정을 차례차례 견학한 우리는 ‘Moraris’라고 이름붙여진 교육센터로 이동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Military’ 코스와 ‘Ranger’ 코스를 밟고 있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8명의 교육생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교육생 중 한 명은 멕시코의 치과 의사였는데, 보철 과정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이 코스에 자원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3개월간 정해진 과정을 완수해야 수료증이 나오는 코스입니다.
Zirkonzahn은 ‘Moraris’라는 교육센터뿐만 아니라, 피라미드 형태의 ‘Mountain Monastery’ 교육센터를 별도로 짓고 테마별로 세미나 공간을 마련하여 치과의사와 치과기공사가 소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테마 세미나실의 아이템 하나하나는 치과기공사의 손길을 대변하듯 장인의 손길이 느껴져 무척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Brunico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교육센터를 설립하여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고 하니, Zirkonzahn의 운영 철학을 다시 한 번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오후 시간에는 ‘Forte’라는 교육센터로 향했는데, 이곳의 인테리어, 책상배치, 자유공간 등을 살펴보니 칠판만 바라보는 일반적인 교육장과는 달리 생각하고 소통할 수 있는 건강한 세미나를 추구하는 창립자 ‘Enrico Steger’의 마음가짐을 느낄 수 있어 절로 박수가 나왔습니다.
우리 일행은 여기에서 새로 개발된 블록들의 임상 예시를 공유하고 3D Stain 핸즈온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연자가 처음 소개해 준 케이스는 이번에 새로 나온 Prettau 2 Dispersive에 3D Stain을 사용한 케이스였습니다.
Dispersive 블록은 유럽 특유의 차가운 지르코니아 느낌이 현저히 배제되어 있었고, 오히려 따뜻하고 좀 더 투명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레이어 없이 쉐이드 재현이 가능하다고 하니 무척 놀라웠습니다.
다음 케이스는 Multistratum 블록을 사용한 것이었는데, PMMA와 매우 유사하지만 내구성과 마모저항성이 현저히 우수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수년의 수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하는데, 여기에서는 주로 임시 보철물이나 바이트 스플린트에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합이 무너진 환자에게 시적을 하는 경우, 별도의 프렙 작업 없이 자연치 위에 바로 시적하여 사용해 볼 수 있다고 하니 다양한 활용방법이 머리에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연자의 데모도 진행되었는데, ‘Prettau 4 Dispersive’라는 새로운 전치 쉐이드 블록에 3D Stain을 사용하여 특성화 작업을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연자는 각각의 컬러 효과에 대해 설명하고, 마지막으로는 조합된 컬러를 보여주었습니다.
‘Blue’ ‘Transpa’ ‘Orange’ 그리고 아주 미량의 ‘Black’ 네 가지를 섞으면 투명도가 높고 입체적인 채도를 가진 컬러를 재현할 수 있었는데, 이 컬러를 ‘Sean’의 컬러라고 불렀습니다. ‘Sean’이라는 사람이 제품의 특성을 100% 활용하여 자기만의 컬러를 만들면, 그 컬러는 이후로 ‘Sean’이라고 이름붙여 부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이 붙은 믹싱 컬러라니, 정말 멋졌습니다~!
아무튼 3D Stain은 뭉쳐지지 않고 고르게 발라지고, 여러 번의 소성을 거쳐도 동일한 쉐이드를 안정적으로 재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색의 혼합으로 개성 있는 쉐이드 연출이 가능했습니다.
다음은 우리가 모델을 통해 보았던 레진 스크류 케이스였습니다. 이 모델은 Zirkonzahn의 ‘모델리어’로 디자인하고 최종 밀링까지 한 케이스로, 스크류를 직접 밀링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스크류 홀 내면에 나사산이 있어 레진 시멘트로 홀을 채우는 것과 동일한 역할을 합니다. 한국에서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케이스이며, 새로운 재료와 함께 적용된 예시였습니다.
이렇게 첫날의 강의가 끝났습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20년 이상의 베테랑 치과기공사였는데, 이날 배운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본적이고도 단순한, 그러면서도 매우 핵심적인 팁과 테크닉이었습니다. 더불어 새로운 재료들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한 참가자는 “기공소로 돌아가 어떤 케이스에 어떻게 적용해볼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올라 매우 흥분된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 2019년 2월 5일
오늘은 디지털 교육을 위해 ‘Mountainary’ 교육 센터로 향했습니다. 이 곳은 치과의사와 치과기공사가 함께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하며, 각 세미나실의 아이템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재치있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한편, 젊고 발랄한 연자는 ‘Implant planner’라는 소프트웨어와 ‘Plane analyser’라는 장비를 소개했는데, 치과와 치과기공사의 소통에 혁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장비라고 합니다.
Implant planner는 CT 촬영 데이터를 담고 있는 Dicom(다이콤) 파일을 불러와서 서지컬 가이드를 만드는 소프트웨어입니다.
치과기공소에서 서지컬 가이드를 모델링하고 제작하려면 치과에 확인하는 과정을 여러 번 거쳐야 했는데, Implant planner는 치과에서 사용하는 CT 데이터 파일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구강 상태를 작업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데이터로 치과와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수정에 대한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Plane analyser라는 장비는 환자의 좌우 측방 교합운동을 있는 그대로 디지털화해서 가져오므로 아날로그에서 반드시 필요했던 ‘고딕 아치’를 디지털로 대체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합운동이 수치화되어 레포트 형식으로 출력되기 때문에 환자, 치과의사, 치과기공사 간의 공동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고, 그러한 이유로 매우 정확한 교합 조정이 가능하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더불어 지금까지는 비대칭 구조를 가진 환자의 경우 최종 데이터를 얻으려면 무척 긴 시간이 필요했는데, Plane analyser를 이용하면 디지털 정보로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합니다.
연자는 스스로를 모델로 삼아 Plane analyser를 적용했는데, 디지털 상의 고딕 아치가 연자의 구강 운동을 정확히 재현하는 것을 보는 순간 디지털 교합의 최고 정점을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 강의는 ‘Modifier’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의 메인 화면이 슬라이드 스크린을 꽉 채우는 순간, 이 기행문의 서두에서 언급한 5년 전의 그 엔지니어가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공란으로 처리된 부분이 모두 새로운 기능으로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5년전에 질문을 던졌던 모 기공소의 소장님이 마침 이번 기행에 함께하고 계셨는데, 소장님도 감회가 새로운 듯 화면을 보자마자 달려오시더니 “정말 놀랐습니다. 기억하세요? 5년 전에 내가 질문했던 것 말입니다. 정말 전율이 오네요. 그때 이미 5년 후를 예상하고 시스템을 개발했단 말이잖아요!” 하면서 상기된 얼굴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그 소장님이 느끼고 있는 전율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Modifier 프로그램은 Denture, Partial, Orthodontic, Individual tray 등 다양한 보철물을 제작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입니다.
특히 Denture의 경우, 새로운 스캔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교합 등록을 해주면 자동으로 환자의 교합 평면을 찾아 배열되기 때문에 매우 편리하면서도 정확하게 작업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로써 모든 강의가 끝났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는 연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5년 후에는 치과기공계가 어떻게 바뀔까요?”
“글쎄요... 개발팀과 협력하면서 느낀 점이라면, 과거 5년이 디지털 치과기공의 과도기였다고 한다면, 앞으로의 5년은 안정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더욱 급격하고도 가파른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결국 모든 디테일을 만드는 것은 사람, 즉 치과기공사의 손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죠.”
▶ 2019년 2월 6일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17명의 우리들은 오랜만에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얗게 눈이 쌓인 알프스 산맥 근처에 걸터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한국에서는 생소한 사슴 스테이크도 먹어보고, 오스트리아로 넘어가 그림같은 인스브루크를 여행하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이곳의 환경이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여유와 자신감이 마냥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곳 이탈리아에서 경험했던 많은 일들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Zirkonzahn 본사 방문 기행을 시작하기 전에 참가자들이 제게 당부한 말씀도 돌이켜보았습니다.
“우리는 유명한 연자의 유명한 이론 강의를 듣고자 이탈리아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새로운 재료와 프로그램을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기본적이고도 유용한 테크닉을 배우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디지털 치과기공으로 보다 편리한 작업이 가능해졌지만, 그 대신 치과기공의 기본을 간과하는 경향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본을 배우러 이탈리아에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참가하신 분들이 입을 모아 얘기했습니다.
“잠시 놓쳤던 치과기공의 기본을 배우고, 더불어 미래의 첨단 치과기공을 함께 배우고 돌아갑니다!”
함께한 모든 분들께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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