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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치과 관련 사이트에 처음 가입하였습니다.

by 진천농다리 posted Feb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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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을 떠나서 타국에서 치과 기공사로 근무 한지 꽤 오래된 임충섭입니다.

 

1976년도에 OO보건전문학교(OO보건대학)을 졸업 후 선배님의 소개로 서울 OO치과 기공소에서 실습 기공사로 근무하다 1978년에 쿠웨이트 정부치과병원에 취업되어 현재까지도 근무 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오래 있다 보니 한국의 치과기공에 대한 소식은 거의 전무한 생태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 청년들의 취업난이 극심하다는 소식은 인터넷으로 보아온 터라 치과 기공사들의 취업난도 어렵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몇 분의 글을 읽어보았습니다.

 

제가 해외에 취업되기까지의 저의 경우를 조금 소개하는 것도 후배님들께 조금은 도움이 되겠다 생각되어 적어볼까 합니다.

 

저는 청주공업고등학교를 졸업 후 개인 사업체에 취업하여 약 2년 정도 근무 하던중 군 입대 통지서가 나와 바로 입대 하였습니다. 제대 한 후 OO보건전문학교 치과기공과 2(야간반)에 입학하였습니다. 낮에는 치과에서 선배 기공사의 기공하는 것을 눈여겨보았고 오후에는 학교 공부를 하였습니다. 낮에 선배기공사의 일을 어깨너머로 보아온지라 남들보다 기공학을 공부하는 데는 좀 더 유리한 조건이었지요. 전문 용어를 많이 알고 있기에 이해가 쉬웠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을 정도로 끝까지 질문을 해서 알아야 했습니다. 심지어는 친구들이 질문 좀 그만 하라고 성화를 부릴 정도 이었습니다.

 

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통학 거리가 편도 60 Km( 자전거 10Km, 기차 50 Km)이었습니다. 하루 왕복 120 Km를 통학했기에 제대로 공부도 잘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OO보건전문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처음 보건전문 학교에서 공부 할 때는 내가 열심히 해서 치과기공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은 솔직히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고등학교 때에 제대로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를 못했으니 전문학교에서 만이라도 열심히 해보자는 굳은 각오와 군 복무도 필한 나이든 사람으로서 어린 동생 같은 친구들에게 뒤처진다는 것은 많이 부끄러운 일 이었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전공과목에서는 항상 우수한 점수를 받았지만 일반교양 과목, 특히 영어와 수학은 나이어린 동생들을 따라 갈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공부를 하고 졸업하였고 바로 1976년 국가고시에도 합격하여 서울 OO기공소에 실습생으로 취업되었습니다.

 

실습생으로 취업되어 일하고 있을 때 소장님 친구 분이시며 서울치과기공사회 학술위원 직함을 갖고 계신 분께서 볼일 있어 오셨다가 저를 보시더니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시듯 저의 기공 관련 지식을 은근히 테스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전공과목은 열심히 공부 한 터라서 질문에 막힘없이 모두 답을 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 질문 Foss에 대해 질문 하였는데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용어 이어서 답을 못했습니다. 그 선배님이 인간성이 좋으신 분이라면 모르는 후배에게 알려주실 수도 있겠지만 그런 분이 아니었던지 그것도 모르느냐는 비웃는 웃음을 지으시고는 떠나버렸습니다. 객지에 와서 처음으로 당해보는 치욕스러운 일이기에 몇 날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꼭 찾아서 알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실습생 신분이기에 기공물 배달도 바쁠 때는 다녀야 했습니다. 합정동에 있는 치과에 갔는데 원장님이 쉬고 있으시기에 사정 이야기를 드리고 Foss에 대해 알려 달라 부탁을 드렸는데 원장님도 모르신다며 책장에서 원서를 찾아보시더군요. 치아 형태학과 과 관련된 Foss 영문 자료를 보여 주셨습니다.

 

책에는 Foss가 설명이 되어있었고 몇 단어 외에는 학교서 배운 용어이기에 알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해석을 못하겠습니다.

 

여기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내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영어라는 장벽을 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더 전진 할 수 없다는 큰 깨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뚝섬에 있는 누님 집에서 출퇴근을 하였었는데 누님께 기공소에서 숙식을 하겠다고 설명을 드리고는 큰 뜻을 품고 기공소에서 24시간 생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공소에서 일주일쯤 생활하고 나서 소장님께 면담을 신청하고 이유를 말씀드렸고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외출을 허락받았습니다.

 

을지로에서 가까이에 삼일 빌딩 대각선 위치에 있던 국제외국어 학원(I. L. I)학원 영어 초급반에 신청 하였습니다. 중학교 1~2 학년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는 터라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초 영어는 확실히 해야겠다는 결심으로 눈치 보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1년 반쯤 되니 문법도 좀 알겠고 말문도 열렸고 간단한 문장 해석도 가능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습니다.

 

이 무렵 저에게는 또 하나의 좋은 기회가 찾아옵니다.

쿠웨이트 정부치과병원에서 치과기공사 4명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조선일보, 동아일보에 게재 되었다고 기공소에 함께 근무하는 친구가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해외개발공사가 합정동에 있었는데 자청해서 그곳에 배달 심부름을 가겠다고 했고 남은 시간에 해외개발 공사에서 응시원서를 작성하여 제출 하였습니다. 4개월 정도쯤 지났을 무렵 개발공사에서 시험 날짜 통지서가 옵니다. 이때에 기공소 소장님께 솔직히 말씀드리고 기공소를 퇴직 하였습니다.

 

시험 날짜에 서울에 올라와보니 4명 모집에 55명이나 응시한 것을 알게 되었고 떨어 질까보아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시험 보기 전에 시험관은 쿠웨이트에서 온 보건성 차관보가 직접 구두시험을 본다고 알려주어 조금은 안심 되었지만 그래도 치과기공사 역사상 처음으로 일간지에 광고해서 해외 취업하는 시험인지라 응시하신 분들을 보니 저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도 있고 지금도 이름만 대면 기공사라면 다 알 수 있는 쟁쟁한 분들이 많으셔서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의 응시 번호가 거의 뒤쪽 이어서 시험보고 나오는 선배님들의 표정이 아주 어두운 것을 보고는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제의 차례가 되어 시험관 앞에 섰는데 질문 하는 내용이 아주 쉽고 아주 기초적인 쉬운 표현으로 질문을 해서 또박 또박 모두 답을 했는데 다른 분들 보다 더 많은 시간을 질문을 하고 치과기공과 관련 없는 질문도 해서 느낌은 편안했습니다.

 

뒤늦게 안 것은 치과 기공 실력을 테스트 한 것이 아니고 회화 능력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테스트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시험이다 끝나고 개발공사 직원이 발표 하는데 저의 이름도 포함되어있어 최종 합격자 가 되었습니다.

 

여러 분들도 해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쉬운 기초 영어공부를 하셔야합니다.

 

기회는 많고 영광은 준비한 자의 것입니다.

 

졸필을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2016228

Q8에서 임충섭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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