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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소설]보더 몰딩하던 노인(퍼옴 -_-)

by 헨지 posted Dec 1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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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년전의 일이다.

내 풀덴쳐가 안 맞은지 얼마 안돼서 의정부에 내려가 살 때다.

서울 왔다가는 길에 용한 머구리가 있다길래 풀덴쳐를 하러 가기로 했다.

동대문 맞은편 길가에 머구리 노인이 있었다.

덴쳐를 해가려고 깎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읍니까?”

했더니,

“틀니 하나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거던 다른데 가시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맞춰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대충 내 무치악에 맞는 개인 트레이를 고르더니 컴파운드를 녹여 보더 몰딩을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볼을 잡아 당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돌리고 있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만 인상을 뜨라고 해도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더 이상 보더 몰딩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인상을 떠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내며,

“끊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보더 몰딩한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 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차 시간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해서, 될대로 되라고 체념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해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덴쳐가 안맞는다니까. 덴쳐란 제대로 만들어야지, 보더 몰딩하다가 그만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개인 트레이를 숫제 무릎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곰방대에 담배를 담아 피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트레이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 보더니 알지네이트로 인상을 떠 준다.

컴파운드가 굳은지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트레이다.

차를 놓지고 다음 차로 가야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머구리 짓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머구리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허리를 펴고 동대문 지붕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섰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수염에 내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머구리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얼마 후, 집에 와서 덴쳐를 내놨더니, 아내는 잘 맞춰왔다고 야단이다.

전에 한 틀니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내의 설명을 들어보니 플랜지가 너무 길면 점막에 sore spot이 생기기 쉽고 하악에서 덴쳐가 따로 놀며, 플랜지가 너무 짧으면 보더 실링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리텐션이 떨어진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채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머구리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그런데 며칠 후 릿지가 아프고 덴쳐가 맞지 않아서 그 다음 일요일에 상경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자리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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