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공소 조선생님께서
오늘 백마고지에 가신다고 합니다
하루 휴가를 드렸습니다
625당시
백마고지등 여러 전투에 참가한 경헙이 있으신 분입니다
조선생님을 통해서 알게 된 내용이라 궁금해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긴 글이지만 한 번 읽어 보세요
참 고마운 분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분들 때문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이 분의 전투결과롤 인해 한반도의 역사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제2차 대전 결과 프랑스는 승전국의 위치를 차지하였지만 전사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프랑스가 왜 승전국
의 위치에 올라갔는지 상당히 의아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전쟁 초기인 1940년, 독일과 맞붙어 불과 6주
만에 항복하였고 해방도 미국과 영국에 의해서 1944년에나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전후 승전국
이 된 데는 겉으로 드러난 결과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프랑스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조기에 항복한 것은 공격을 가한 독일도 놀랄만한 사변이었습니
다. 특히 지난 제1차 대전 당시에 20~30대의 40퍼센트를 희생당하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것을 유추
한다면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하지만 제2차 대전의 치욕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비록 미미하였지만 꺾이
지 않는 항전의지는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드골이 이끌던 자유프랑스나 레지스탕스의 저항처럼 프랑스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습
니다. 물론 그들의 성과는 미미한 것이었다고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수많은 프랑스인들
의 용기 있는 저항은 전쟁이 끝났을 때 프랑스를 예전의 위치로 돌려놓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만은 사실이
었습니다. 그렇게 저항운동을 펼치던 인물 중에 라울 마그랭-베르느레 ( Raoul C. Magrin-Vernerey
1892~ 1964 ) 도 있었습니다.
그는 제1차 대전 때 초급지휘관으로 활약하였고 제2차 대전 발발 당시에는 외인부대 ( the French
Foreign Legion ) 를 이끌고 전술적으로 프랑스군이 독일군을 유일하게 물리쳤던 나르빅 전투 ( Narvik
Battle ) 에 참전하였습니다. 이후 프랑스 항복 후 500여 부하를 이끌고 망명 자유프랑스군에 가담하여 대
독항전에 적극참여 하였습니다. 그는 종전이 된 후 군에 남아 어느덧 3성장군의 위치에 까지 올라 재건 된
프랑스군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계급을 무려 5단계나 하향한 중령으로 낮추고 또 다시 전쟁에 참전하는 보기 드문 일
을 벌였습니다. 그동안 전쟁터에서 18번의 부상을 입었고 18번 훈장을 받은 맹장이었던 그가 스스로 계급
장을 낮추어 달았던 이유는 지휘하려는 부대가 단지 대대규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대는 6·25
전쟁에 프랑스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탄생한 부대였습니다.
마그랭-베르느네 중장은 제2차 대전에 참전한 예비역을 주축으로 현역 자원병을 지원받아 대대급 부대를
창설하여 파병하자고 제안하였고 그 스스로 지휘관이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장군이 어떻게 대대
장을 맡느냐며 국방차관이 직접 만류했지만 그는 “계급은 중요하지 않다. 곧 태어날 자식에게 유엔군의
한 사람으로서 평화라는 숭고한 가치를 위해 참전했다는 긍지를 물려주고 싶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
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1950년 10월 1일 유엔군 프랑스 대대가 편성되었고 그들이 지구를 반 바퀴 돌아 한
반도에 도착하였을 때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뒤집혀 유엔군이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스스로 강등당
한 마그랭-베르느네 대대장은 미 제2사단에 배속되어 곧바로 최전선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1951
년 2월 전세를 일거에 반전시킨 지평리전투의 한축을 맡아 위대한 승리의 당당한 주역이 되었습니다.
경험이 많은 마그랭-베르느네는 압도적인 적의 대공세에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최대한 적을 유인하여 일
격을 가하고, 적의 심리전에 역 심리전을 펼치며 육박전도 적극 구사하는 다양한 전술로 중공군을 무너뜨
렸습니다. 이 전투의 의의는 실로 대단하여 유엔군이 지난 2개월간의 후퇴를 끝내고 재반격으로 전환되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바로 직전까지 미 합참은 만일 50여 킬로를 더 후퇴하면 대한민국을 포기할
생각까지 하던 중이었습니다.
지평리전투에서 프랑스대대가 보여준 분투는 제2차 대전 초기에 허무하게 무너진 약체의 모습이 아니라
나폴레옹 당시에 전유럽을 호령하던 세계 최강군대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상징인 닭 중에서
도 스스로를 낮추면서 야전을 뛰어다닌 용맹한 마그랭-베르느네는 진정한 최고의 싸움닭이었습니다. 그런
데 6·25전사를 살펴보면 마그랭-베르느네라는 이름은 상당히 낯선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제2차 대전 당시 자유프랑스군에서 활약할 때 사용한 가명인 랄프 몽클라르( Ralph Monclar )
라는 이름을 6.25전쟁에서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6.25전쟁 참전 프랑스대대의 전설적인 지휘관이었던
몽클라르 중령이 바로 마그랭-베르느네 중장이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가명으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어려웠던 당시를 기억하며 용기를 반추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문에 그는 6.25전사의 위대한 몽클라
르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