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호 성
부산 모루치과기공소 대표
가온누리컴퍼니 대표
봄이 오는가 싶더니 한낮의 날씨는 어느새 여름인 듯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네 치과기공도 그러한 것 같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치과기공소에 CAD/CAM 시스템이 도입되고 나니 왁스 타는 냄새도 나지 않는 데다가, 매몰, 주조, 디플라스킹 등의 조금은 지저분하고(?) 귀찮은 공정들도 사라져, 보다 깨끗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고가의 장비값과 재료비의 힘을 빌려 기공료의 부가가치가 좀더 올라가는 듯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생각으로는 최저가 경쟁에서 벗어나 차라리 아날로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듯싶습니다.
기공소 개설을 준비하고 있거나 매출이 감소되고 있는 주위의 선,후배 동료 기공사분들이 CAD/CAM 시스템을 도입하려 하는 경우를 많이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들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소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기존의 소재들도 업그레이드되고 있어 다양한 작업을 디지털화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봅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결과물의 가치가 너무나 평가절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밀링 머신을 포함하는 그나마 쓸만한 풀 세트 장비를 아주 저렴하게 7천만 원 선으로 구매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매달 200개 정도의 지르코니아 보철물을 가공한다 가정하겠습니다.
36개월 리스로 장비를 구매하게 되면, 우선 매월 220만 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또한 재료비로 매월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지출됩니다.
게다가 장비의 유지 비용도 필요합니다. 사용해 보신 분들은 아는 얘기겠지만, 신터링 퍼니스의 열선 교체비용이 연간 120만 원 정도 소요되며, 2년 정도 사용하면 장비 수리비로 대략 300만 원 정도 지출이 됩니다. 그래서 월 유지 비용을 넉넉잡아 20만 원 정도로 잡겠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만 고려하면 CAD/CAM 시스템 도입에는 문제가 없느냐 하면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기계가 알아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니까요. 기계는 그저 거들뿐입니다.
하루 10개의 결과물을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처리하려면 실수령액 300만 원 정도의 직원을 고용해야 할 것입니다. 소장이 직접 작업하면 소장 본인의 인건비는 더 높게 잡아야 할테구요.
여기에다가 4대 보험, 식대, 퇴직금 등등 직원에게 추가 지출되는 비용을 합산하면 대략 370만 원 정도의 지출이 일어납니다.
이번에는 생산 효율과 월매출을 한 번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월 200개 생산량 중 자체적인 리메이크, 장비 에러로 인한 리메이크, 진료실의 미스로 인한 리메이크 등을 합하면 대략 15% 정도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비용을 청구하는 생산량은 170개 정도겠지요.
그렇다면 개당 평균 가격은 어느 정도일까요? 사실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얘기지만 풀지르코니아의 평균가가 6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 최종적인 월매출은 1,000만 원 정도입니다.
자, 이제 한 달에 얼마가 남는지 계산해 보겠습니다. 월매출 1,000만 원에서 리스료 220만 원, 재료비 200만 원, 유지 비용 20만 원, 급여 370만 원을 제하면 딱 190만 원이 남습니다. 물론 전기세, 운송비, 종합소득세 등등은 빼지도 않은 금액입니다.
그래도 남긴 남으니 해야겠지요? 그런데 200개 거래를 뚫어 올 자신은 있으신가요? 게다가 평균 수가를 5만 원으로 낮춘다면 매출은 850만 원으로 떨어집니다.
정말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CAD/CAM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제가 협회의 회무를 보면서 알게 된 통계가 있는데, 2014년 말 기준으로 국내 기공소에 설치된 밀링 머신이 900여 대 정도라고 합니다. 한편, 2014년경 독일 전역에 설치된 밀링 머신은 700여 대 정도였다고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 치과기공계의 밀링 머신 분포는 포화 상태를 넘어 과잉, 초과잉입니다. 말인즉슨, 전국의 치과기공소가 모두 함께 가공 작업을 공유해도 밀링 머신은 남아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CAD/CAM에서 CAM 부분을 뺀다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따져보도록 하겠습니다. 밀링 머신과 CAM 소프트웨어 등을 제외하면 스캐너, PC, CAD 프로그램, 추가로 필요한 모듈 등 대략 2,500만 원 선에서 구매할 수 있을 것이며, 생산량은 월 60개 정도라고 가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총 매출은 월 360만 원이 됩니다.
36개월 리스로 구매하면 월 78만 원 정도가 지출되고, 외주 가공비로 개당 2만 5천 원을 책정하면 총 150만 원이 소요됩니다. 스캐너 내부의 프로젝터를 2년 이후에 교환하거나 수리한다고 생각하면 월 10만 원의 유지비용이 필요합니다.
인건비를 따져 보면, 하루에 3개를 디자인하고 적합, 글레이징을 하려면 2시간 정도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시간당 1만 5천 원 선으로 계산했을 때 월 60만 원이 필요합니다.
최종적인 수익은 월매출 360만 원에서 리스 비용, 외주 가공비, 유지 비용, 인건비를 제외한 62만 원입니다. 어떻습니까? 전체적인 비용의 규모가 줄고 밀링 머신도 보유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어려움은 줄어들 것이며 수익도 창출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CAD/CAM 장비를 모두 도입하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계산을 기반으로 준비하는 것이 여러모로 좋지 않을까요?
최근 3D프린터가 약진하고 있습니다. 소재와 장비가 날로 업그레이드되어 그 끝이 어디인지를 알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CAD 디자인은 크게 변화하지 않겠죠. 그래서 CAD는 필수지만 밀링 머신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풀 세트로 CAD/CAM 장비를 도입하고는 무척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 제 주변에 많은 것 같아서 오늘같이 날씨 좋은 날, 괜히 주절주절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일단 질러놓고 보자!”라고 하지 마시고, 내 상황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함께 할 때 길이 있다는 것에 유념하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한 기공 하십시오~
[덴탈2804 칼럼] 우리는 언제까지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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