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제로투고 기사]소장님들, 안녕들 하신지요...?

by Nuclear posted Feb 1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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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치과기공전문지 [제로]에 투고한 내용입니다

이미 보시눈도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못 보신분들을 위하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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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210a.jpg

 

 

소장님들, 안녕들 하신지요...?

 

요즘 유행하는 형식을 빌어 우리 힘들고 지친 기공소장들께 안부 여쭙습니다.
어제 오늘없이 고된 직업이 치과기공사라면 그 보다 더 어렵고 힘든게 “치과기공소장” 이라는 직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료비와 인건비는 천정부지로 올랐지만 상대적으로 일은 줄고 수가는 또 이곳 저곳에서 얼마나 후려치는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엄동설한에 살얼음판 걷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습니다.

 

사실, 저나 소장님들이나 기공일해서 대박내고 큰 돈을 벌어서 떼부자 되어야지 마음먹고 이 일을 시작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다 보니 스스로 하나라도 만드는데 재미를 붙이게 되고, 또 그렇게 기공일을 오래 하다보니

작지만 내 꿈을 만들어 보자는 마음에 기공소를 오픈한 것 아니겠습니까.

 

밤새 온갖 공들여 만든 기공물이 아주 잘 맞는다는 한마디 인사로 돌아 올 때면 좀 더 열심히 해보자 다짐하고는

또 다른 밤을 낮삼아 일하는, 그런 순수한 사람들이 우리 치과기공사이고 또 기공소장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일만 하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눈은 침침해지기 시작하고 체력도 예전같지는 않다는 걸 느낄 즈음에

지르코니아니 커스텀이니 하는 생소한 단어들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모든 것을 대신 할 것처럼 억대의 기계들이 앞을 딱 가로막고 서 있네요. 게다가 곧 없어질 직종이니 사양산업이니 하며

이런 저런 말들로 사람을 심란하게 만듭니다. 조각도를 잡고 있어도 도통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다가 엎친데 덮친다고 최근에는 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이 듭니다. 그리고 기사와 소장의 생각이 많이 다르고

세대도 달라지다 보니 이제는 오히려 소장이 직원 눈치를 보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일이 바빠지면 직원 눈치를 먼져 보아야 합니다

 

기공소 내부적인 일만해도 속이 터질 지경인데 바깥 일은 또 어떻습니까?
주말도 휴일도 없이 매일을 허덕이며 일하고 나면 집사람 눈치봐야죠, 대학다니는 딸내미 등록금 걱정해야죠,

게다가 별나디 별난 거래처 원장 비위까지 맞춰야 합니다. 그러다가 재료상 외상장부라도 들여다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가슴 한 쪽이 먹먹하고 눈물이 왈칵 솟아납니다. 이것 참... 기공소장으로 산다는 일이 요즘 같이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감히 추측컨대 저 혼자만 그런게 아니라 수많은 기공소장님들 가슴속도 시커멓게 썩어 문드러진지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마음속으로는 기공소를 때려치웠어도 골백번을 때려치웠을 것이고,

모두 정리하고 농사지으러 고향으로 내려 간 것만 해도 수백번은 내려갔겠지요.

 하지만 그저 마음뿐이지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습니까...

 

게다가 제가 거주하는 대구쪽의 덤핑수가가 인쇄된 명함때문에 온통 벌집을 쑤셔놓은 듯 혼란스럽습니다.

쉬쉬하며 몰래 광고하던 덤핑도 이제는 아주 당당히 무슨 룸살롱 양주값 적어 넣듯이 명함에다 인쇄를 해 대량으로 돌린다 합니다.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가 있는 아주 기발한 방법이지요. 오토바이 알바를 시켜 길거리에 뿌리지 않은 걸 고맙다 해야 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소장님들, 우리는 그러지 맙시다.

 

치과기공에서의 기계화, 디지털화가 볼펜 공장에서처럼 똑같은 물건을 엄청나게 찍어내는 그런 기계화 디지털화가 아니지 않습니까?

 어쨌든 사람의 손이 필요한 직종인데 하루아침에 기공계가 모두 문닫는 일이 벌어지기야 하겠습니까?

 물론 새로 배울 것이 많아지고 새로운 장비에도 투자해야하니 당연히 어렵고 힘들어지겠지만 그래도 여태껏 소장님들의 힘으로

 잘 버텨 오지 않았습니까?

 

일부 자랑스레 덤핑해대는 소장님(놈)들,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겁니다. 소장 혼자서 작업하는 것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기공소 직원들이 두 눈 뜨고 모조리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소문이 퍼지고 악명이 높아지고... 

저의 연륜이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니지만 여지껏 지켜본 경험으로는 그런 인간들은 결국 자기 꾀에 빠지거나 자신이 저질렀던

불법에 똑같이 당해 망하고야 말더군요. 

 

그리고 싼 값 찾아 헤매는 철새 거래처는 영원히 철새가 될 뿐입니다. 품질이나 양심은 개나 줘 버린지 오래인데다가

눈에 불을 켜고 싼 곳만을 찾아 떠다니니, 우리는 아예 그런 곳에 눈길도 주지 않고 사는 것이 속이 편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행여 평소의 거래처가 덤핑 때문에 잠시 흔들렸다 해서 너무 기죽지 마세요. 지금껏 해왔던 것처럼 당당하게 기다리시면 분명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때는 수가 왕창 올려 들이밀고 당당히 요구하기로 합시다.

 

그리고 덤핑하는 분(놈)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손이 발이니 늘 제대로 되는 게 없고, 어떻게 한탕해서 빨리 벗어나려고 잔머리만 굴리고

 굴리다가 기어코 생각해 낸 것이 덤핑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 분(놈)들도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타면 자기 이름 석 자까지

내다버리고 그런 짓거리를 하겠습니까!그러니 덤핑과 철새 둘이서 다정히 손잡고 자기들끼리 잘 해보라 제쳐두고

우리는 당당하게 맞서 기공일에 전념합시다.  

 

소장님들, 우리들만이라도 지킵시다
우리는 흔들릴지언정 절대 뽑히지 않는, 산전수전 다 겪은 소장들 아닙니까.

 

집에 있는 아들, 딸에게 그리 큰 돈은 벌어다 주지 못하지만 그 대신 당당하게 살아가는 아버지의 이름을 새겨줍시다.

늘 고생하는 기공소 직원들이지만, 그래서 미안한 일도 많지만 직원들이 어디에 가서라도 자기 직장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밝힐 수 있는 기공소의 이름을 지켜줍시다.

 

요즘 “살아남은 자가 강한 자” 라는 유행어가 한창 회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냥 살아남은 자는 제대로 된 강한 자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지킬 것은 지키면서 살아남아야 진정한 강한자일 것입니다.

 

소장님들, 힘냅시다.
이번 주말에는 가까이 지내는 소장님들과 근교 산에라도 다녀오시면 어떨까요?
요즘 겨울산이 아주 좋습니다. 내려와서 하산주 한 잔씩들 하시고, 늘 밤일하는 우리 동료소장들 등 한 번 토닥여 주시고,

 "수고 했다",   "다 지나갈거다", "걱정마라"  격려 한마디도 꼭 해 주세요.

제 등은 누가 두드려 줄지 기대해 보면서 저도 배낭이나 꾸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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